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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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8 09:19 | 최종 수정 2019.03.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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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45)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22일(二月二十二日) 목(木) 흐림
고모님의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본즉, *사시四時를 가리지 않고 외로이 서있는 국사봉國寺峯 소나무, 조금도 변變함 없는 푸른빛으로 이 속계俗界에 자랑하듯….
오늘도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손님들의 떠드는 분주한 소리에 그만 밖으로 뛰어나가다.
바로 박태식 집으로 가 ‘엿’치기 하여 2백환을 썼다.(내가 무엇 때문에 하였을까?)
방으로 들어오다.
그 위대하시고 훌륭하신 학자學者들께서 또한 선배들께서 자라나는 2세 국민二世國民을 위해 밤잠을 가리지 않고, 몇 해를 연구하여 미미微微한 이 자者에게도 주었건만 한심타!! 먼지 3척尺이나 쌓이고 한 어두운 방구석에 책상 없이 그저 꾹 처박혀 있다. 누구 때문인가? 못난 나 때문이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하게 하였다면 그렇지도 않을는지 모른다.
주인主人 못 만난 책도 가련하려니와 또한 알맞은 서재를 못 구求한 나 역시 원망하는 것이다.
이상異常타! 별세別世하신 ‘어머님’께서 밤마다 꿈에 보이다. * 사계절.
아버지의 일기 (46)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23일(二月二十三日) 금(金) 흐림
어젯밤에 이병희 형 댁에서 자고 새벽 일찍이 왔다.
오늘은 조금 조용한 틈을 타서 공부하여 보려고 책을 폈다.
연然이나 마음잡지 못하여 조금 독서하다가 그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옆집 권영복權榮福 집에 ‘엿’ 꼬느라고 분주한 곳에 가보았다.
참으로 이상異常하다.
그 쌀이 달고 맛좋은 ‘엿’으로 된다는 것은….
아랫방에는 오늘도 술꾼이 많이 오시어 떠들어대다.
고모님께서는 ‘점촌’ 장에 가시다. *공산이 적막한데 슬피 우는 저 두견아
촉국 흥망이 어제 오늘 아니어든
지금에 피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끊나니
- 정충신 * <현대어 풀이> 사람 하나 얼씬거리지 않는 호젓한 산 속에서 슬프게 우는 저 소쩍새야! 촉나라가 일어났다 망한 것이 어제나 오늘의 일이 아니라, 아주 옛날에 있었던 일이거늘 이제껏 피가 나도록 슬피 울어 듣는 사람의 간장肝腸을 이렇듯이 다 끊어 놓느냐?
아버지의 일기 (47)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2월 24일(二月二十四日) 토(土) 흐림
추운 아침이다.
앞들 논에는 얼음이다.
세수를 한 후, 권영순權榮順에게 *반지半紙 5장을 꾸어 습자 숙제를 하다.
막 쓰는 즈음에 홍식洪植으로부터 상중尙中 선생님이 오셨다는 말에 곧 서적을 아랫방으로 옮기다.
나는 어느 선생님이 오셨나? 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속速히 올라가 보았다.
본즉은 교감校監 선생님과 임林 선생님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 금치 못하다.
또한 부끄러운 가정형편家廷形便으로….
연然이나 선생님들께서는 곧 출발出發하신다 하며 나섰다.
뒤이어 우리 집으로 안내案內 하였으나 들어오시지 않고 가시다. 섭섭하다. 나의 집이 좀 더 부귀富貴하다면이야….
오후午後는 아랫집에서 황의석黃義碩 장병將兵을 만나다.
과연 반가워 뛰어갔으나 권영연 형과 말다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 섭섭하였다.
나는 반가워 맞이하는데 대對하여 냉담히 대對하는 감感이 들었다.
* 얇고 흰 종이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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