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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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2 09:40 | 최종 수정 2019.03.1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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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 (57)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3월 6일(三月六日) 화(火) 맑음
막 눈을 떠서 창문을 열고 보니 함박눈이 왔다.
모든 초목草木들은 머리에 백꽃 같은 눈 꽃송이를 이고 할 수 없다
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5cm).
심지어는 못 이겨 부러진 나뭇가지도 있다.
온 천지天地가 깨끗하고 순백純白한 일색一色으로 변變하였다.
만약萬若, 우리 동족상쟁同族相爭의 이 원통한 내란內亂을 하루아침에 이 눈 내린 것과 같이 아무 다툼 없이 평화平和로이 되옮기기를 축祝하였다.
아직도 한 사람도 걸어가지 않은 길이다.
길인지 밭인지 분간分揀할 수 없을 만큼 발자취를 보지 못하였다.
학교學校에는 미군美軍이 없다.
한편 반가우나 또 한편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2시간時間을 마치고 곧 학교學校로 와서 청소할 계획을 하다.
오늘은 이정배가 우리 자취생활自炊生活에 며칠 유숙留宿하려고 들어오다.
아버지의 일기 (58)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3월 7일(三月七日) 수(水) 흐림
밥술을 놓자마자 곧 등교登校하다.
벌써 길에는 사람들이 걸어 완연하게 길이 나있다.
첫 시간에는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 낭독연습하다.
국어國語 선생님은 *김연권金演權 선생님이었다.
인격人格이 매우 탁월卓越하신 선생님으로 우리 사범과師範科는 행복幸福하다.
요사이 여학생女學生이 타교他校에서 많이 전학轉學하여 남학생男學生은 거의 여학생女學生의 반수半數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선생님들의 교수敎授 아래 따뜻하게 공부工夫하나 집에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요사이 평안平安하오신지 인편人便이나마 있으면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우러나오다.
앞 냇가에는 오늘도 여전히 좌우左右에 쌓인 눈을 두고 유유히 흐르는 것이다. 과연 학창시절學窓時節은 희망希望에 넘치는 시기時期이며 재미나는 인생대하人生大河의 일 노선一路線이 아닐까? * 1971년 공검중학교 1학년 재학 시 초대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였다.
아버지의 일기 (59)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3월 8일(三月八日) 목(木) 맑음
오늘도 우리 배움터 침천정枕泉亭으로 정배 군과 함께 갔었다.
저쪽에서도 5, 6명의 학생學生이 떼를 지어 걸어오며 서로들 어떠한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는 여학생女學生, 그들도 오늘의 배움을 위하여 아침 일찍부터 등교登校하였거늘!
하물며, 일一 대장부大丈夫로서 무슨 목적目的으로 무엇을 하려고 추움과 고통苦痛을 느껴가며, 따뜻한 고향故鄕을 떠나 만산蔓山이란 어느 초가집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가?
“좀 더 하여 보자.”
첫 시간에는 흑판黑板을 가지러 읍邑으로 갔다.
수업授業을 다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 ‘서영구’ 형의 그 남아男兒다운 일에 아니 웃을 수 없었다.
그 반면反面에 또한 여학생女學生에게 우리의 남학생男學生이 웃음거리로 되어 있다는, 아주 그 유치한 이야기로 선생님에게 호소呼訴하는 사람도 있었다.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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