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60~62일차)

김소정 승인 2017.10.13 09:32 | 최종 수정 2019.03.18 13:12 의견 0

아버지의 일기 (60)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3월 9일(三月九日) 금(金) 맑음
몸이 괴로워 어젯밤에는 일찍 자다.
옆 마구간에서 울어대는 닭소리에 눈을 떴으나 또다시 무의식적無意識的으로 잠이 들어, 동창東窓에 희미한 햇빛 줄기의 쏘임과 함께 잠을 깨다.
연然이나 나무 한 가지 남지 않고 또한 간장조차 하나 없어 자취생활自炊生活이 싫증이 나는 감感이 들다.
마침 주인主人 어르신네의 호심好心으로 마침내 밥을 지어 *장물과 **꼬이장 두 가지로, 오늘 아침의 조반朝飯을 해결하려 하니 과연 맛없어 조금 먹다가 말았다.
막 아침을 먹고 병룡 군과 장난하던 중, 부지중不知中에 진논에 엎어져 그만 흙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것에든지 침착하며 정신적으로!”
오후午後에는 동생들이 나무와 짚을 사 가지고 오다.
나는 우리 동지同志들과 땀을 흘리며 Piano를 침천정枕泉亭으로 옮기다.
* 간장.
** 고추장.


아버지의 일기 (61)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3월 10일(三月十日) 토(土) 맑음
오늘은 토요일.
1주일도 오늘로써 마지막 가는 토요일이다.
동생들은 오늘이면 그리운 집에 간다고 매우 기쁜 얼굴로 등교하였다.
나는 4시간을 마치고 곧 ‘정배’ ‘춘매’ ‘용식’들과 같이 하숙집으로 왔다.
벌써 동생들은 출발하였던 것이다.
나도 곧 친구들과 같이 걸어가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갔다.
벌써 대자연大自然은 ‘새싹’의 첫봄을 알리고 있다.
버들나무에는 볼그레한 촉을 수줍은 듯이 보일 듯 말 듯하게 내보이고 있다.
또한, 저편 양지쪽에는 7, 8세歲쯤 된 어린 촌색시들이 바구니를 옆에 끼고, 나물 캐는 그 모습이 첫 봄이다 하는 감感을 어느 틈에 알리고 있다.
도중途中 1학년생學年生과 같이 동행同行하였다. 나는 걸음을 빨리 하여 집에 계시는 아버지 평안平安하시온지 초조한 마음으로 갔다.
여전如前히 아버지께서는 무사無事하시었다.
연然이나 밥 지어 주는 아이가 아파서 방에 드러누웠다.
즉시에 기가 막혀 아! 기가 막혔다.
7일 동안 타향에 있다가 마침 일요일을 통通해 그리운 내 고향 나의 집을 찾아왔건만, 지금은 오직 눈물 흘러내리게 하는 서글픈 고향 우리 집이었다.
어느덧 저녁이다.
밥 먹지 못하고 뒷동산 잔디 위에 누워 지나간 ‘어머님’ 사랑에 다시금 잠기어 보았다.
생각한들 아무 소용 없는 뼈아픈 과거사過去事다.
흘러내리는 것이 눈물뿐이요, 입에 나오는 것이 울음뿐이다.
“모든 것이 모순 세상世上” 인생人生의 비관悲觀을 아니 느낄 수 없는 운명運命에 처處하고 있는 것이다.
몸 아픈들, 배고픈들 그 누구에게 호소呼訴하리, 오락가락 의지할 데 없는 이내 신세…. 오, 오, 비나이다.
하느님께 비나이다.
어리석고 불효자不孝子인 이 자者는
마땅한 죄를 달게 받으오리다.


아버지의 일기 (62)
1951년(檀紀 四二八四年) 3월 11일(三月十一日) 일(日) 맑음
동리인洞里人들께 덕德할 수 있다는 생활生活을 하여 보다.
밤에는 김대경 사랑방에서 자고 아침 일찍이 집으로 갔다.
나는 앞 학교學校로 다녀서 창원 댁에 가보았다.
가본즉 벌써 1학년생學年生은 자동차自動車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어 집으로 와서 면面에 ‘고모님’ 배급配給을 타러 갔다.
거기서 나는 제2차第二次 징병신체검사徵兵身體檢査에 3월 16일 출두出
頭하라는 해당증證을 보았다.
나는 깜짝 정신이 없었다.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
연然이나 안심安心하고 배급을 타서 집으로 왔다.(쌀 6, 보리쌀 12)
배는 고프나 중식조차 없었다.
곧 상주尙州로 떠나가야 할 즈음이다.
생각하니 별안간 뜨거운 눈물이 비 오듯 하는 동시同時에 아버지 역
시 슬픔을 금禁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다.
방아 찧던 창원 모친이 오시어 많은 경계警戒의 말을 하였다. 시베리아 벌판에 김이 꺼질락 말락한 우리 집 가정형편家庭形便이다.
가련하신 아버지이시며 불쌍한 이 자者다.
아버지께서는 훌륭하시다.
“이 천지간天地間에는 아버지 같으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확언確言하고 싶다.
나는 아버지를 내가 알릴 기회機會만 있다면 세계世界 곳곳마다 알리
고 싶다.
나는 어느 시절時節인지 들었노라, 전환轉換하는 역사歷史의 수레바
퀴를 한번 번성繁盛하면, 한번은 비번성非繁盛 한다는 것을! 언제나 한
번 우리 가정형편도 한번 나아질 때가 있으리다.
일금 4천환을 얻어 눈물의 내 고향을 떠나는 이 자者, 차라리 이럴
줄 알았다면 두 어깨에 지게를 지고 부모父母님을 봉양奉養하였을 것
을 하는 생각이 용솟음친다.
우리의 이 사정事情을 잘 아시는 ‘둘리네’ 모친 나에게 떡을 일부러
뒤따라오시며 주시다.
평생平生 잊지 말자!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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