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74~78일차)

김소정 승인 2017.10.18 10:12 | 최종 수정 2019.03.18 13:13 의견 0

아버지의 일기 74
1951년(檀紀四二八四年)3월23일(三月二十三日)금(金)맑음
오늘은 식사당번食事當番이다.
남다르게 일찍 일어나 쌀을 씻었다.
이것이 나는 우연히 부끄럽고 싫은 감이 떠오르는 동시同時에 웃음의 한줄기 광선光線과 함께 그 부끄러웠던 생각은 어디로인지 달아나 버리었다.
유달리 오늘은 비행기 50기機가 떼지어 연달아 북北을 향向하여 날아간다.
밭 갈던 농부農夫, 소위 인텔리* 지위地位에 있는 자者까지 의심疑心을 갖게 되었다.
침천정枕泉亭에는 어제 친구들이 매우 수고하여 창문을 달아 우리에게 온화溫和함을 안겨 주었다.
교감校監 삼수三壽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장래에 많은 도움 될 금언金言의 말씀을 하시어, 우리들로 하여금 많이 감득感得하게 하여 주었다.
남학생男學生은 곧 수업授業을 마치고 집으로 오다.
우리 자취생自炊生은 간장이 다 떨어져 김 4톳을 사가지고 와서 맛있게 먹었다.
조금도 독서讀書한 것 없이 밤은 깊었다.


아버지의 일기 75
1951년(檀紀四二八四年)3월24일(三月二十四日)토(土)맑음
날은 맑게 개이었다.
동산東山에는 벌써 아무 공급供給 없는 해님은 불끈 솟았다.
아침밥을 먹은 후, 곧 등교登校하였다.
수업授業 두 시간을 마치고 상주읍尙州邑에 책상 운반하러 갔었다.
연然이나 모두 각 단체各團體에서는 책상을 주지 않아 다시금 학교學校로 와서 학교 근처에 있는 책상 몇 개를 운반하였다.
나는 하숙집으로 와서 책 몇 권과 자루를 가지고 Mp 입초立哨 섰는 데 가서 김정현과 같이 기다렸다.
마침 자동차自動車가 와서 타고 먼저 가다.
그런데 나는 매우 감개무량하였다.
다름이 아니었다. ‘가는다리’(세천細川)**에 와서 자동차自動車는 정지하였다.
이때, 우리 동포同胞 이 전란戰亂으로 말미암아 2세 국민병二世國民兵이 대구大邱까지 갔다 오는지, 피골皮骨이 매련 없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지경地境의 모습으로, 좀 태워 달라고 3 ~ 4명의 사람이 손을 들고 소리쳤으나 그냥 차車는 달아났다.


아버지의 일기 76
1951년(檀紀四二八四年)3월25일(三月二十五日)일(日)비
오늘은 일요일이다.
밤중부터 뿌리던 봄비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 모르며 내려오다.
하도 심심하여 마을에 놀러가던 중, 학교學校에서 김정현이 부르기에 가본즉 이신우 형이 와서 풍금 연습을 하였다.
나는 신우 형에게 대對할 면목面目이 없었다.
왜냐하면 전前에 금전金錢관계로 인因하여….
역시나 그치지 않고 비는 그저 부실부실 와서 겨울에 얼었던 그 모든 산천초목山川草木들의 더러운 티끌을 완전히 추움을 씻어버리기 위함인지 하루종일 오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 사고事故, 김무경金武經 형의 사고事故였다.
모든 것이 그 순간적瞬間的인 잘못으로 인因하여 그의 일 생애一生涯에 큰 흑점黑點, 또한 무한無限한 고통苦痛을 겪을 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매우 걱정을 하였다.


아버지의 일기 77
1951년(檀紀四二八四年)3월26일(三月二十六日)월(月)흐림
아버지의 깨움에 밥 짓는 아이와 고모님은 귀찮음을 가리지 않고 새벽밥을 하여 주시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 넓고 넓은 우주宇宙 인간세상人間世上 한없이 넓은 일생선一生線이 나 오직 우리 집 가산家産은 53세歲이신 아버지와 이 자者 둘, 어디에 비比할 바 없는 고독비애孤獨悲哀감을 아니 느낄 수 없으며, 아버지의 근심, 걱정 1/10,000도 갚을 줄 모르는 이 자者, 천지天地의 자연自然을 끼고 살아갈 수 없는 불효막대不孝莫大한 이 자者이다.
일찍이 나선 모양인지 매우 일찍 하였다.
본교本校에서 조회朝會를 마치고 분교分校***로 가서 수업授業을 받았다. 책상이 있어 매우 편리便利하며 평안平安하게 수업授業을 받게 되었다. 4시경時頃 영화구경을 하였으나 어떻게 되는지 도무지 보는 당시에도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일기 78
1951년(檀紀四二八四年)3월27일(三月二十七日)화(火)흐림,비
오늘은 상중尙中, 우리 학교學校 제4회 개교 기념일開校記念日이다.
오늘 역시 비는 그치지 않고 조금씩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본교本校에서 기념식記念式을 거행擧行하였다.
장소場所는 매우 좁고 매우 떠들어 대었다.
별로 ‘내빈’도 오시지 않아 간단히 식式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좀 더 시국時局이 평안平安하다면 오늘의 그 기쁨은 충만充滿하였을 것이다.
또 한편 돌이켜 볼 때, 일선장병一線將兵의 그 목숨을 바치고 싸우시지 아니하면은 오늘의 이 간단한 식式도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을 때 감사하기 무엇을 올릴 수 없다.
동양사東洋史 학습장學習帳을 정리整理하고 이리저리 놀던 중, 밤은 깊어 다만 비행기 1기機가 공중을 울리며 어디로인지?
* 지식인. ** 가는다리(세천)는 자연부락명이다. *** 상주중학교 분교가 부원에 있었다.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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