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아버지의 일기(104~108일차)

김소정 승인 2017.10.26 09:41 | 최종 수정 2019.03.18 13:15 의견 0

아버지의 일기 104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22일(四月二十二日)일(日)맑음
불안不安감 속에 아침을 맞이하였다.
어디 가도 슬픈 속마음 풀 수 가 없었다.
부친父親의 밥상 위에 놓인 그 반찬 이 자者의 가슴을 애태우는 것이었다.
다만, 소금물과 쓴 쑥국만이 놓여 기막힌 우리의 가산家産을 알리는 동시同時에 이 불초자식不肖子息은 아버지에 대對할 면목이 없었다.
나는 곧 책보를 옆에 끼고 한없는 슬픔을 가슴에 안고 집을 떠났다.
나는 내 자신自身이 낙오자落伍者가 된 것 같고 오직 쓸쓸한 황야荒野만이 닥쳐오는 것 같아 외로운 마음 금하지 못하겠다.
마음의 고민苦悶을 느끼며 걸어오던 중, 어느덧 만산蔓山 자취하는 집에 왔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아 나는 홀로 앉아 화학化學책을 읽고 연구하다.
중식은 순익에게 가서 같이 지어 먹었다.
공부工夫하던 중, 몸이 노곤하여 자려고 하는 데 창원과 정필이 오다.
저녁 할 나무가 없어 2천4백환에 한 짐 사다.
 

아버지의 일기 105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23일(四月二十三日)월(月)맑음
날은 맑게 개이었다.
텃밭 복숭아나무, 배꽃나무에는 이제는 꽃이 만발하여 온갖 벌, 나비들을 부르고 있다.
본교本校에는 상산학교商山學校 5, 6학년學年이 가교실假校室을 얻어 수업授業준비를 하고 있다.
6학년學年은 내가 전前에 상산학교商山學校 교생 시校生時에 가르치던 그 아동兒童들이 공부하고 있다.
때때로, 이 아동兒童들은 만날 때 지나간 그때가 생각되었다.
그때, 그렇게 그 아동兒童들이 정답게 다니더니 요사이는 그리 반갑게 대對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늘은 2시간을 마치고 극장에 들어갔다.
‘속리산俗離山의 새벽’ 극장 안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있다.
곧 극은 시작되어 모든 대상對象들의 시선視線이 무대舞臺로 집중集中되었다.
특히 나는 거기에서 나오는 인물人物, 남매男妹의 그 몹쓸 운명運命은 참으로 눈물겨운 비극悲劇의 장막을 초래하였다. 다 견학見學후, 마음잡지 못하여….
 

아버지의 일기 106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24일(四月二十四日)화(火)맑음
선명鮮明한 아침이다. 저 갑장산 봉우리에 막 넘어오는 전투기 3대가 오늘도 인류人類의 적敵을 무찔러 가기에 아마 새벽부터 나선 모양인 것 같다.
요사이 들리어 오는 전과戰果의 소식消息, 38선線을 넘어 맹렬猛烈한 전투戰鬪를 개시開始하고 있다는 보도報道, 우리들로 하여금 일선一線 장병將兵에게 감사와 아울러 축복祝福을 비는 바이다.
오늘도 아무 힘 없이 다 떨어진 신발에 떨어진 옷을 입고 등교하였다.
나는 왜! 이러한 처지處地에 직면直面하고 있을까? 오직 나의 가는 앞 길은 고독孤獨의 무대舞臺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2시時간째에 도 장학사道?學士 선생님께서 우리 공부工夫하는 모습 을 보시다.
그리고, 이제 곧 임시시험臨時試驗을 시작始作한다고 담임擔任 선생님으로부터 말씀하시었다.
그 순간의 학급 일동學級一同은 모두 불쾌不快의 표현表現을 띠고 있다. 밤에 계획적計劃的으로 공부工夫하려고 하였으나 생리적生理的인 잠으로….
 

아버지의 일기 107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25일(四月二十五日)수(水)맑음
붓을 들고 보니 쓸 것이 막연漠然하다.
날마다 쓰고 보니 아무 유다른 일기문日記文이 되지 않아 맨 그 말 그 글을 쓰고 마는 것이다.
동생들 몇 명이 놀러 와서 잠을 자기에 방이 매우 좁았다.
사진 대금寫眞代金 3천환을 꾸다.
본교本校에서 조회朝會를 마치었다.
교장校長 선생님의 훈화訓話 말씀에 각자各者 자각自覺하라.
자라는 남의 곡식穀食을 밟지 마라.
남하南下한 우리 겨레를 애호愛護하자.
참으로 우리들에게 금언金言될 말씀이었다.
교육시간敎育時間은 교장校長 선생님께서 출장出張하시어 수업授業을 받지 못하였다.
침천정枕泉亭의 뒤 언덕에 뾰족이 싹튼 삼동三冬추,117 지금은 노란 입술을 활짝 벌려 온갖 나비와 벌떼를 부르고 있다.
하교 시下校時 담임擔任 선생님으로부터 다가오는 주일週日에 시험試驗
이 시작始作될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자! 이제 시기時期는 왔다.
내가 언제 마음속의 그 남모르는 약속約束, 결심決心 이때다!
 

아버지의 일기 108
1951년(檀紀四二八四年)4월26일(四月二十六日)목(木)맑음
시험試驗 기일을 앞두고 밤 늦게까지 공부하려고 붓을 들고 보니, 그 몹쓸 잠에 이 자者의 눈을 까불게118 하여 그만 ‘잠’의 노예가 되어 눕고 보니, 5시 종을 울리기에 일어나고 보니 이미 그 중요한 시간은 흘러 지금 얼마 아니 있어 밝은 새날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조식朝食을 먹고 최춘매 군을 기다리었으나 오지 않아 학교學校로 갔다.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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