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룡 칼럼] 시월의 마지막 밤, 그리고 가슴 답답한 아침

용산 '이태원 참사'=청춘+핼러윈+압사壓死

칼럼니스트 정하룡 승인 2022.10.30 09:09 | 최종 수정 2022.10.30 20:01 의견 0
대한민국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 핼러윈 인파. 2022년 10월29일 밤.


2022년 10월 29일 밤, 대한민국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 핼러윈 행사에 수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형 압사壓死 참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10월 30일 새벽 4시 5분, 시작한 3차 브리핑에서 146명이 숨지고 15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집계하는 중에도 사망자와 부상자가 늘고 있다. 현재 사망자 중 101명은 병원으로 이송했고, 45명은 서울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안치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압사사고는 29일 밤 10시 22분경 쯤 발생했다. 핼러윈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다수의 인파가 넘어지고 밟히면서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핼러윈Halloween은 매년 10월 31일, 그리스도교 축일인 만성절萬聖節, 전날 미국 전역에서 다양한 복장을 갖춰 입고 벌이는 '귀신축제'일이다.

본래 핼러윈은 켈트족의 전통 축제 '사윈Samhain'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켈트족이 죽은 귀신(혼령)들이 몰려온다고 생각해 한 해의 마지막 날 10월31일에 열렸다. 음식을 나누고 귀신분장으로 악령을 쫓는 풍습이었다.

호박에 눈·코·입을 뚫은 등을 집에 걸고, 아이들이 유령·마녀·괴물 모양새로 돌아다니며 "맛있는 거 안 주면 말썽피울 거예요(Trick or Treat)"라고 외치면 사탕이나 과자를 주는 축제는 100년 전 미국에서 자리잡았다.

미국의 핼러윈은 켈트족의 풍습을 간직하고 있던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치르는 소규모 지역 축제였다. 그러나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1백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핼러윈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선 2000년대 영어학원에서 시작돼 유치원·어린이집에서 귀신분장 놀이를 하며 확산되다가 한국의 땅이면서도 외국인의 땅으로 불리는 이태원(李泰院, 利泰院)과 결합해 순식간에 주류 축제로 상업화됐다.

대개 역원(驛院)을 두면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의 이름도 '원'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것이 관례다. 서울 남산의 남쪽, 지금의 용산구 이태원동의 동북쪽에 역원 이태원(역사) 주변에 마을이 생기면서 이태원이라 부르게 됐다. 1907년(융희 1) 이곳 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당시 경기도 고양군으로 이주시켰는데 그 마을 이름도 이태원이라 불렀다.

처음 이태원은 일본인 전용 거주지로 조성됐다. 당시 일본인들을 이타인(異他人)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식 지명을 수도정(水道町) 2정목(二丁目)이라 하였으나 주민들은 '이태원'이라 불렀다.

1922년 4월 경성부(京城府)의 확장에 따라 이태원리는 경성부에 편입되고 그때까지 경성부와 고양군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었던 2개의 이태원은 하나로 광역화하여 지금의 용산구 이태원동이 됐다.

6·25전쟁을 거친 후 미군부대의 재배치, 미8군사령부가 인근에 있어 미군들의 위락지대로 번창하기 시작하였고, 그후 점차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과 관광의 명소로 발전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이태원은 '핼러윈'과 함께 '트윈 공포 지역'이었다.

'3밀(밀집·밀접·밀폐) 자제 수칙'을 지켰음에도 클럽 발 2차 유행 진원지로 우려가 컸었다. 방역당국은 1단계 방역수칙대로 4㎡(1.2평)당 1명만 입장시키는지 또 마스크는 쓰는지 특별점검하고, 어긴 클럽은 바로 문닫게 하겠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재유행할 때 이태원 클럽의 '5월 악몽'을 기억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핼러윈과 겹쳐지면 어쩌나...'하는 우려도 떠나지 않았다. 코로나19에서 벗어난 첫 번째 핼러윈이 왔다. 해방감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방감'은 어이없게도 '숨막힘', '기막힘'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가슴 답답한 일이다.

압사壓死란 압력에 의해 숨을 못 쉬어 죽는 '외상성 질식사'. 말 그대로 몸이 짓눌려 죽음. 몸이 깔린 상태에서 압력에 의해 압박 혹은 늑골 골절 등으로 인해 허파가 눌러져 죽음. 심정지 상태에서 3~4분, 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뇌사 혹은 사망한다.

1992년 2월 17일 뉴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 내한공연 참사.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2년 6월 13일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효순, 미순). 그리고 얼마전 '세월호 참사'와 어제의 '이태원 참사'는 모두 '질식사'다. 모두 '숨막혀 죽었'다.

특히 이번 참사는 '꽃같은 젊은이들의 죽음'이다. '새벽이슬같은 청춘들의 죽음이다' 일자리도 결혼도 출산도 인구절벽도 정치도 경제도 대통령도 '청년이 사라지면' 모두 소용없는 짓이다.

참으로 가슴 답답하고 우울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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